시스템트레이딩을 포기한 이유, 그리고 인정해야 했던 것들
- 주식투자 운용실적
- 2026. 7. 13.

시스템트레이딩을 포기한 이유, 그리고 인정해야 했던 것들
꽤 긴 시간을 시스템트레이딩에 깊에 빠져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감정을 배제하고 원칙만 지키면 누구나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은 공포에 팔고, 탐욕에 산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보는 이유 역시 감정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제거한 자동매매 시스템을 만든다면 어떨까?
손절은 기계적으로,
익절도 기계적으로,
매수와 매도 역시 사전에 정한 규칙대로.
적어도 인간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시스템트레이딩 여정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이동평균선 전략이었다. 그러다가 RSI를 추가했고, 볼린저 밴드를 추가했고, 거래량을 추가했고, 피보나치 되돌림을 추가했다. 변동성을 고려했고, 추세를 고려했고, 시장 상황에 따라 매개변수를 변경했다.백테스트를 돌리고, 결과를 분석하고, 다시 코드를 수정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투자자가 아니라 어설픈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틈만 나면 차트를 보고 있었고,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지만 나는 로그파일을 보고 있었다.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왜 이 전략이 실패했는가?"를 찾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렸다.
신기한 점은 백테스트에서는 꽤 괜찮은 전략들이 실제 시장에서는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전략은 횡보장에서 강했고, 어떤 전략은 추세장에서 강했다.
어떤 전략은 상승장에서는 아름다운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지만, 하락장이 오자 처잠하게 무너졌다. 반대로 하락장 방어에 강한 전략은 상승상에서 손실을 보여줬다.
결국 모든 전략은 특정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시장은 그 환경을 끊임없이 바꾸고 있었다. 내가 전략을 완성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장은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더 많은 데이터를 넣으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1년 데이터를 넣고, 3년 데이터를 넣고, 10년 데이터를 넣었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오히려 과최적화라는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과거에는 완벽했던 전략이 미래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뒤돌아보면 나는 시장을 이해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이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자동매매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요즘은 AI도 있고,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도 많다. 거래소 API를 연결하고, 주문을 넣고, 손절과 익절을 구현하는 것은 적당한 시간과 노력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중요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자동매매를 구현하는 것과 수익을 내는 전략을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자동매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기술의 영역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돈을 버는 전략을 만드는 것은 아마도 최상위 레벨의 영역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퀀트 헤지펀드, 수학자, 통계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여서 경쟁하는 시장. 수백 명의 박사급 인력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하는 시장. 초 단위가 아니라 밀리초 단위로 경쟁하는 시장.
그 시장에서 개인이 퇴근 후 몇 시간씩 코딩해서 우위를 가져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결국 시스템트레이딩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냉정하게 패배를 인정한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없는 분야를 인정하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기로 했다. 투자는 자존심을 지키는 게임이 아니라 자산을 불리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전략은 단순하다. 미국 지수추종 ETF를 꾸준히 모은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꾸준히 모은다. 이게 끝이다.
복잡한 알고리즘도 없고, 화려한 진입신호도 없다. 시장이 오르면 산다. 내리면 더 산다. 정해진 간격으로 일정 금액을 투자한다. 그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계속산다. DCA(Dollar Cost Averaging), 적립식 매수 전략.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단순하고 지루한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성공한 방법이기도 하다.
S&P500은 수많은 기업들의 혁신과 성장을 담고 있다. NASDAQ100은 기술의 발전을 담고 있다. 그리고 비트코인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자산이라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을 분석하지 않는다. 어떤 기업이 살아남을지 예측하지도 않는다. 대신 시장 전체의 발전에 투자하기로 했다. 앞으로 인류가 퇴보하지 않는다면, 지수는 결국 우상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이 살아남는다면, 그 역시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이다. 이제 개별 승자를 맞추려하지 않고 시장의 성장 자체를 소유할 계획이다.
물론 앞으로도 폭락은 올 것이다 30% 하락도 올 것이고, 50% 하락도 올 수 있다. 비트코인은 70%, 80% 하락할 수도 있다. 그때마다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전략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절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올라도 산다. 내려도 산다. 그냥 산다.
돌이켜보면 시스템트레이딩을 연구했던 시간들이 아주 헛된 것은 아니었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배웠으며, 무엇보다도 늦게나마 스스로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시장을 이길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의 성장을 함께 누리는 것이 적합한 사람이란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전략일지도 모른다.
워렌 버핏은 대부분의 투자자에게 S&P500 인덱스 투자를 추천했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왜 이렇게 단순한 방법을 추천할까? 하지만 이제는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 복잡함이 반드시 우월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에서는 단순함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시스템트레이딩을 포기했다. 하지만 투자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제야 비로소 내가 끝까지 지속할 수 있는 투자 방식을 찾은 것 같다.
시장을 이기려하지 않는다. 시장의 편에 서기로 했다. 앞으로도 나는 꾸준히 ETF를 사고 비트코인을 살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계속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시간이 충분히 흐른 뒤 돌아봤을 때, 화려한 전략보다 꾸준함이 더 강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