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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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일어난 이유

 

1. 개요
민족의 비극인 625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북한 인민군이 38도선 전 지역에서 대대적인 포격으로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이지요. 이를 시작으로 1953년 7월 27일까지 한반도는 전쟁에 휩싸이게 됩니다. 625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기본적으로 남북 분단에 있습니다. 분단의 원인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이유는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가 아닌 외부의 요인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2. 분단의 원인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시점에서, 한반도는 뜻하지 않게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독일이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된 것처럼 일반적으로는 전쟁에서 패한 국가가 분단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입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전범국인 일본이 아니라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엉뚱하게 한반도가 38도선을 기점으로 분단이 됩니다. 이때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이지요.

 

 

 

 

사실 2차 세계대전이 조금만 더 늦게 끝났으면, 우리나라는 2차 세계대전의 참전국에 승전국으로서 일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국내진입작전 수행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 보다 빨리 일본이 항복을 해버려, 종전 후 아무 대접도 못 받고, 찬밥신세로 전락을 해버린 것이지요. 두고두고 역사의 아쉬운 대목입니다.

 

 

 

 

원자폭탄 투하 2발로 급작스럽게 일본이 항복을 해버리자, 한반도는 주인 없는 무주공산이 되고, 일본군을 무장해제 시킨다는 명분으로 소련군과 미군이 진주하게 됩니다. 이로서 민족의 분단이 시작된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일본이 분단되어야 하나, 섬나라이고, 지정학적 위치상 우리나라가 훨씬 중요했기에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습니다.

 

 

 

 

3. 애치슨 라인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대립이 점점 심해지고, 한반도는 두 진영이 만나는 민감한 지역이 됩니다. 이런 민감한 때에 1950년 1월 10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은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알래스카-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선으로 한다고 발표를 해버립니다. 남한을 노골적으로 배제한 애치슨 선언에 북한은 남한의 침공 가능성을 오판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4. 625 전쟁(한국전쟁)의 발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 전역에서 북한군은 남침을 개시합니다. 이때 당시 국군은 비상경계령이 6월23일 24시를 기점으로 해제되어 병력의 30% 이상이 외출 및 외박인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발발합니다. 참 뭔가 이상한 상황입니다. 이래저래 국군의 내부 사정을 북한군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서울은 3일 만에 함락되었으며,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들 몰래 대전으로 피난을 갑니다. 그러고 북한군의 남하를 막는다는 명분하에 한강철교를 폭파시켜 수많은 국민들을 희생시킵니다. 또한, 훗날 말단 책임자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워 사형을 시킵니다. 어찌 보면 민족의 비극은 분단이 아니라 지도층의 부패, 도덕적 해이, 책임회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 대목입니다.

 

625의 발생원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미국 방위라인의 남한 배제, 북한의 오판 등 다양한 원인들이 얽혀 발생하였습니다. 다른 것은 다 변할 수 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한 변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고, 멀리 보려면 그만큼 지난 일을 상기하라고 했습니다. 항상 분단 후에는 통합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현재 주변국의 상황이 민감하게 돌아가는 만큼 차분한 준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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